전쟁사 이야기 번외편 - 기만과 속임수
여태 암호와 해독, 보안이나 정보전을 다룬 칼럼에서 '진주만 공습'을 정말 자주 다뤄왔습니다. 여태 자주 나온 '미드웨이 해전'과 더불어 진주만 공습은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전대미문의 사건이며, 역사적으로 큰 분기점입니다. 단순히 일본군이 몰래 미국 함대를 격파하였다고 요약하기에는 그 과정에 수많은 사람들이 개입하였고, 또 미국측의 오판과 실수가 겹치면서 일어난 대사건입니다.
진주만 공습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과 일본은 동아시아 정세를 두고 치열한 협상을 하고 있었지만, 동아시아를 완전히 움켜쥐려는 일본 제국과, 태평양으로 맞댄 일본의 팽창을 강하게 압박하던 미국은 한치의 양보도 없는 대립을 이어나갔습니다.
표면적으로 평화를 유지하던 양국은 진지한 군사적 충돌이 임박했다는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고, 미국은 나름의 준비를 서둘러 일본의 암호를 계속 해독하며 일본군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미군은 필리핀까지 주둔하고 있었는데, 일본군이 기습적으로 선제공격을 가한다면 아마 필리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필리핀에 대한 병력을 계속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들 알다시피 일본군의 선제공격은 필리핀이 아니었습니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1/1c/Pearl_Harbor_bombings_map.jpg
https://en.wikipedia.org/wiki/Ford_Island#/media/File:PLanes_burning-Ford_Island-Pearl_Harbor.jpg
https://en.wikipedia.org/wiki/Attack_on_Pearl_Harbor#/media/File:Attack_on_Pearl_Harbor_Japanese_planes_view.jpg
(진주만 공습은 전술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작전이었으나,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명백하게 적으로 만들어버리면서 결국 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망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전략적으로는 실패한 작전이었습니다. 사진들은 순서대로 진주만 공습도, 불타는 비행장, 어뢰공격을 받고 물기둥이 솟구치는 장면)
일본은 치밀하게 하와이에 있는 간첩을 통해 진주만에 주둔 중인 해군 함대의 이동 방식과 훈련일, 휴식일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으며 수심이 얼마인지까지 알아냈습니다. 당시 항공기에서 떨어뜨린 어뢰는 20m 아래까지 잠수하였다가 부상하여 군함에 명중했는데, 진주만의 수심은 12m로 어뢰공격이 불가한 상황이었습니다.
때문에 일본은 특별히 어뢰를 개량하면서, 10m이내까지만 가라앉게끔 조종사들이 비행 고도와 속도를 조정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불행히도 수비를 하던 미국은 안일하게도 수심이 12m라는 사실 때문에 적의 어뢰 공격은 불가하다고 판단하여 어뢰 공격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두지 않았었습니다.
게다가 전시가 아니었지만 군부대가 대규모로 몰려있는 시설을 방어하기 위한 레이더나 대공포 설치도 지지부진했었으며, 적의 접근을 사전에 포착하기 위한 정찰기들의 장거리 초계 비행도 자원 상의 문제로 엄격히 시행되지 못했습니다.
진주만 공습이 발생하기 직전 진주만의 총책임자 킴벨 제독은 일본의 해외 주재 대사관들이 암호 기계와 문서를 소각하고 있으며, 일본군 함대의 행방이 몇주간 묘연하다는 등 기습적인 공습의 단서를 계속 보고받았으나 설마 필리핀이 아닌 하와이가 공격받으리라는 상상은 전혀 하지 못했었습니다.
미 해군은 완전히 방심한 일요일 역사적으로 전례없는 규모의 항공기들이 진주만을 덮쳤고, 항구에 정박해있던 함선들은 고정표적으로 전락하여 일본군의 어뢰, 수평폭격, 급강하폭격을 두들겨 맞습니다.
(일본군의 공습을 받고 탄약고가 유폭되어 대폭발을 일으키는 미군 함선
http://www.navsource.org/archives/05/373.htm )
무선통신이 개발된 이후 보안과 암호는 극도로 중요해졌으며, 적국의 암호를 해독하여 미리 적의 계획을 알아낼 수도 있을 정도로 가치가 막중해졌습니다. 진주만을 공습하던 일본 항모 기동부대는 철저하게 이동 중 무선침묵을 유지하면서 존재를 숨겼고, 대규모 함대가 코앞까지 오도록 미국은 일본의 기만에 넘어가 방심하다가 코가 깨집니다.
이렇듯 일본은 진주만 공습의 성공까지 아주 치밀한 작전 계획과 주도면밀한 움직임으로 일관하였고 역사상 유례없는 항공기에 의한 공습이 발생합니다.
이제 일본은 미국과 돌이킬수 없는 강을 건넜으며, 태평양을 두고 양국은 피비린내와 썩은내가 진동하는 총력전을 개시합니다.
(진주만 공습 직후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발표하는 루즈벨트 대통령.
https://en.wikipedia.org/wiki/Infamy_Speech )
이후의 일본과 미국의 싸움에서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바로 보안유지와 암호해독, 정보전이었습니다. 일본과 미국은 상대를 속이기 위해 계속해서 더 어렵고 해독하기 힘든 암호를 개발하여 적용했고, 심지어 상대방의 암호를 해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만하기 위한 작전까지 실행합니다.
진주만 공습을 기획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이 전시 시찰을 나간다는 정보를 입수한 미국은 톡공대 파일럿들을 조직하여 공중에서 기습을 하여 격추시켰고, 이 작전을 우연으로 가장하기 위해 해당 공역을 몇번이나 정찰기를 보낼 정도로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야마모토 제독을 포착하고 격추시켰다는 것은 미국이 일본군의 암호를 해독하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도 알아차릴 수 있는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그냥 보내주고 암호 해독 능력을 유지할 것인가, 혹은 당분간 적의 암호를 전혀 해독할 수 없다는 어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습격할 것인가를 대통령에게까지 보고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미국은 작전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에 거주하던 인디언 나바호 족을 모집하여, 나바호 언어를 바탕으로 한 암호 체계까지 개발했습니다. 영어를 기반으로 한 암호이리라 생각한 일본은 미국에게 정보전에서 철저히 농락당합니다. 이것에 대한 구체적인 일화는 영화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수능 국어에 대해서 연구하는 입장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벌어진 정보전을 바라보면 언어의 심오한 의미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어서 칼럼에도 자주 쓰게 됩니다.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하고 읽는 능력을 뛰어넘어, 해당 국가의 문화나 철학까지 알 수 있고, 더 나아가 인간의 인지 작동까지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됩니다.
전쟁사 시리즈
https://orbi.kr/00020060720 - 1편 압박과 효율
https://orbi.kr/00020306143 - 2편 유추와 추론
https://orbi.kr/00020849914 - 번외편 훈련과 숙련도
https://orbi.kr/00021308888 - 3편 새로움과 적응
https://orbi.kr/00021468232 - 4편 선택과 집중
https://orbi.kr/00021679447 - 번외편 외교전
https://orbi.kr/00021846957 - 5편 공감과 상상
https://orbi.kr/00022929626 - 6편 정보전
https://orbi.kr/00023174255 - 7편 실수와 인지오류
https://orbi.kr/00023283922 - 번외편 발상의 전환
https://orbi.kr/00023553493 - 8편 준비와 위기대응
https://orbi.kr/00023840910 - 번외편 비전투병과
https://orbi.kr/00024082234 - 9편 예상과 예측
https://orbi.kr/00024160983 - 10편 신뢰성
https://orbi.kr/00024418374 - 번외편 보안
https://orbi.kr/00024715925 - 11편 기출분석
https://orbi.kr/00025035755 - 12편 파일럿 교육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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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orbi.kr/00025579054- 14편 설계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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