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의 함정
반회갑 인생을 살며 느낀 점은, 꽤 많지만 그 중 하나는 구태여 자랑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고쳐 쓰면 내가 구태여 자랑해야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라면 차라리 자랑을 안 하는 게 낫다.
예를 들면, 어느 공학도가 MIT에 다닌다고 했을 때 그는 구태여 내가 꽤 괜찮은 대학을 다닌다고 자랑을 할 필요가 없다.
이건 서울대에도, 연세대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예전에 잠시 적을 두었던 ICU(한국정보통신대학)라는 대학이 있다. 지금은 카이스트에 편입됐지만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을 총장으로 3학기 3년 졸업,
등록금 전액 무료라는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으로 출범한 대학이다. 당시 누군가 내게 이 대학이 한국방송통신대학이냐며 물었을 때 난 일반학사대학이라고 한 마디 하면 될 걸 10마디 대답으로 대신했다.
"한국정보통신대학이라고.. 지원자격 자체가 1등급이고 과학고에서 애들 많이 뽑고 카이스트랑 이제 곧 비슷해질 대학이야. 총장은 정통부 장관이고 모두 영어 수업에 해외 연수 무료로 보내주고 학생당 교수진 비율도 업계 최고이고 기숙사도 사실상 무료야. 입학 전부터 연수를 보내줘 어쩌고 저쩌고"
이 경우 문제는, 듣는 입장이 "와 대단하구나" 생각하기보다 나의 계속되는 늘어지는 말에 심심이를 붙잡고 싶어할 확률이 더 크다는 점이다.
살다 보면, 굳이 부연해야 성립되는 자랑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기 또 하나 사례가 있는데 신입생들이 가장 많이 유혹에 빠지는 경우다. 바로 특정 학교 혹은 특정 전공에 수석, 차석입학했을 경우인데 난 정말 이 때 입이 근질근질했다. 어떻게든 이 말을 꺼낼 기회만 엿보다 포착될 때 꺼내곤 했는데 문제는 단순히 "수석했다" 정도로 대화가 마무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말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왜 다른 곳엔 안 쓰고 이 곳에 왔어?"라는 질문을 받게 되고 이 경우 열에 아홉은 "그냥 난 여기가 오고 싶었어"라는 말을 꺼냈던 것 같다. 애초 내가 말을 꺼내려던 동기가 날 부풀려 자랑하고 싶다는 허영에서 시작됐기에 끝맺음이 허영으로 끝나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이런 나의 허영을 귀신같이 포착한다. 당시 나에게 "너 잘난척 하냐?"라는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이는 절대 없었고 다들 놀라며 좋은 얘기를 해주었지만 무의식 속엔 나에 대한 인간에 대해 "수석" 이외에도 "자랑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뉴런 하나를 새겼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남는 장사는 아닌 셈이다.
나이를 먹어 고시를 보고, 취업을 하다 보면 비슷한 사례가 또 생긴다. 고시의 경우 이런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사법시험 1차는 전국 순위 안에 들었는데 2차 볼 때 그 전날 고열 때문에 드러누웠어. 집중을 못했어"
"행정고시 3차까지 갔는데 최악의 면접관이 우리 조에 왔더라고. 우리 전부 질문에 말려서 안 됐어"
하나같이 들어보면 실력은 되는데 여건이 안 돼서 안 됐다는 그럴 듯한 항변이지만, 문제는 화자의 의도와 달리 청자는 이런 저간 사정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내가 최종까지 갔는데 ~~해서 안 됐어"라는 말을 아마 취업준비생들은 귀가 닳도록 여러 사람에게 들었을 것이다. 합격을 하고 안 갔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최종까지 갔든 서류에서 안 됐든 안 된 건 안 된 거다. 오히려 자신이 그래도 최종까지 갔다는 조그마한 자랑을 통해 자기가치를 높이려다 사람만 우습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장자는 "입은 닫고 의지는 키우라"고 했다. 보여주면 되는 거다. 어느 자랑에 부연이 붙는 순간, 그건 자기자랑이 아니라 자기기만이 된다. 물론 인류사가 타인에 의한 인정 욕구에 추동되어온 인정 역사라는 사실은 부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인정을 자신이 pr해서 받는 것은 그다지 효율적인 방법도 아닐 뿐더러 폼도 안 난다.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실제로 인정받는 사람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더라.
이상이. 작지만 깨닫게 된 소소한 파편이다.
Best Regards,
Snu R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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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이나 먹어 18
현강생들 엿 맥여야지~~ 1인당 엿을 한 박스를 주면 참 좋을텐데 쌤이 영세 강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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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한의대
경탄스러운 글입니다.
GOOD
찔리네요정말
잘읽었습니다
우와.. 놀랍네요 대단하십니다 ㅠㅠ
저도 어쩌다가 저도 모르게 말하는 중간에
자랑이 섞이면, 듣는 사람은 반응 하지않지만
뜨끔합니다..
정말 글쓴이님 말대로
자기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하면 할수록
그 인정으로 부터 멀어지네요..
그리고 구태여 궂이 그럴 필요도 없는것 같네요..
내가 잘 살아가면 되는 것인데..
나는 나일뿐인데, 내 가치를 올리면 될터인데..
그렇게 , 보여지는 나를 만들고.. 치장하고..
참 의미없는 일이네요.
많이 느끼고 깨닫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굳굳 배워갑니다~
난 저런거 들으면 진짜 깜놀하는데...와 진짜?? 쩐다...이렇게 됨..
너무너무 와닿네요ㅎㅎ진짜 자랑은 내가 자부심을 느끼고 표현하지 않아도 그것을 남이 느끼는 거지
남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하는 자랑은 그렇게 구질구질하고 꼴사나울수가 없죠
그리고 대부분 자랑하고 싶어서 하는 자랑 대부분은 과장이거나 사실은 그렇게 별볼일은 없는것들이 대부분....
자신의 자존감이 낮다는것을 입증하는 어떤 반작용 같습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저를 반성하게됩니다
좋은글 잘읽엇어요 ㅎㅎ
대단한 글입니다. 읽을수록 과거의 내가 얼마나 창피한 짓을 했는지 부끄러워지네요.
와 큰거하나 배워갑니다
bb..
맞어!!! 바로 이거야!
정말 크게 깨닫고 갑니다
깨닫고 갑니다..
gg
으.. 과거에 햇던 모든 행동들을 리셋하고 싶네요
부끄 ㅠㅠ
감사합니다 !
가만보면 학창시절 공부 많이 한 학생들 경우에 특히.. 자랑하고픈 마음이나 말변명 등을 많이 하는것 같아요.. 공부보다는 사교에 더 노력한 친구들은 그래봐야 영양가 없다는걸 일찍 알지만.. 공부 열심히한 케이스는 대학가고 사교를 많이 하고 경험이 쌓이면 알게 되는 것 같네요... 문제는 수험생의 경우엔 그러면 별로 안좋은데 그걸 알자니 성적이 낮을테고 성적이 높으면 그럴테고.. 딜레마 네여.. 공부도 잘하면서 사회성도 능하기(겉보기에 능해 보이는 것 제외하면요) 참 어려운 일 같음
진짜 칭찬을 받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을 한 사람은 본인이 굳이 알리려 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자연스레 알아주지 않나 싶습니다.오히려 셀프칭찬은 당장은 주변에서 좀 알아주는 척 해서 본인은 잠시 우쭐해할진 몰라도 실질적으론 아무런 영양가도 없을뿐더러 역효과나기 딱 좋죠. 좋은 글이라 좋아요 누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짱이다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실제로 인정받는 사람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더라.
저 정말 저렇게 되고 싶습니다...
마음 깊게 새길 이야기군요
저도자랑을좀많이하는데.. 무의식적으로 그걸 말하고싶어지더라거요.. 연대경영성적으로 성대경영와서인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진리는
" 겸손은 최고의 미덕이다"..
좋은 말씀이십니다ㅠㅠㅠㅠㅠㅠ 많이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
감사합니다!
좋은 태도 배워갑니다ㅎ
감사합니다
자랑 안 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