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도덕·윤리 연구소 [1070387] · MS 2021 · 쪽지

2021-11-19 1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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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학년도 수능 생윤, 윤사 간단한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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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모든 수험생 여러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있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두 과목 모두 시험지는 어제 저녁에 이미 다 풀어 봤지만,

오르비 서버의 폭주로 인해 평을 그때 남기지 못하고……

늦게나마 이렇게 글을 남겨 봅니다.



두 과목 종합 평


윤리 과목에서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방법으로 통상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1. 선지의 해석 및 판단 과정에서 해당 사상가의 특정 개념의 정의나 체계를 정확히 알아야 하게끔 만든다.

2. 선지를 양화 문장으로 만들어, 판단 과정에서 해당 사상가에 스스로 이입하여 사례/반례를 찾거나 사례/반례의 부존재를 증명하게끔 만든다.

3. 지문으로 매우 낯선 글을 사용하거나, 교육 과정 내 여러 사상가 중 누구의 글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교묘한 글을 사용한다.

4. 지문의 정보를 활용해야 풀 수 있는 추론형 선지를 제시한다.

5. 생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운, 교과서나 연계 교재 한편에 적혀 있는 숨은 소재를 활용한다.


이 중에서 3은 사실 안 쓰인 지 좀 오래됐습니다.

이번 수능에서도 생윤, 윤사 두 과목 모두 딱히 3이 쓰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번 도덕·윤리과 수능은 1, 2, 4, 5를 모두 활용한,

간만에 나타난 고차원적 시험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생활과 윤리


생윤은 여태 2에 상당히 많이 의존해 오면서, 특히 자연과 윤리 단원에서 도덕적 고려 대상에 대한 집합론적 사고를 요구하면서 킬러 문항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상이 꽤나 다름을 넘어서 심지어 집합론적 사고에 근거해 선지 풀이를 단순히 암기해 오던 학생들을 제대로 저격했습니다.

14번 자연과 윤리 문항에서는 칸트의 사상 체계 내에서 독립적 가치, 내재적 가치란 그 가치 소유자의 존엄성에 근거해 발생하며, 존엄성이란 도덕 법칙을 입법하고 따를 수 있는 능력, 즉 이성에 근거한다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풀 수 있는 문항이었습니다. 그런 소재를 ㄴ, ㄷ 두 선지에서 활용하면서 소거법 사용의 여지도 최소화했군요. 사상 체계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소홀히 하는 수험생이 윤사에 비해 많은 생윤의 과목 특성을 평가원이 정말 잘 공략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단순히 지엽적인 방식이 아니라, 본질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말이죠.

심지어 많은 학생을 오답으로 이끈 14번 ㄷ의 경우, '쾌락도 고통도 전혀 느낄 수 없지만 이성 능력은 충분한 불감증·무통증 환자가 있다면, (칸트의 입장에서) 그의 도덕적 지위를 인정해야 할까?'라는 사고 실험을 한 번이라도 해 본 학생들에게 매우 유리하게 풀리는 선지입니다. 그런 사고를 한 번이라도 해 봤으면, 칸트가 쾌고 감수 능력을 도덕적 지위와 본질적으로는 별개로 취급할 것이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런 사고 실험이야말로 생활과 윤리 과목의 본질인 '이론 윤리의 응용과 실천'에 정녕 부합하는 활동입니다. 결국 14번 문항은 1의 방법으로 단순히 난도만 높인 것이 아니라 교육적 가치까지 담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잘 만들어진 문항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번 분배 정의 문항에서는 롤스 차등 원칙의 수립 배경, 소유권 문제(평등한 자유의 원칙 관련) 등을 잘 알고 있어야 무탈히 ㄴ, ㄹ을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ㄷ의 "기본적 자유는 절대적"이라는 부분은 기본적 자유의 제약 가능 조건이라는, 널리 알려진 교과 외 내용으로도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만, "기본적 자유들은 서로 상충할 수 있기에 조정되어야 하지만"이라는 롤스 지문으로부터 추론하여 풀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10번 문항에서는 1, 4의 방법이 조화를 이루어 킬러를 만들어 낸 느낌이네요.

10번, 14번 두 문항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1, 2, 4, 5의 방법들이 고루 쓰였습니다. 다만 보통은 소거법으로 정답을 찾을 수 있는 형태로 제시되어서 '폭탄처럼 어렵다.'라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튼 간만에 난이도와 교과적 가치를 모두 챙긴 시험이라는 생각입니다.



윤리와 사상


윤사는 정말 '4년 연속 1컷 50을 방지하기 위한 평가원의 작전 성공'(드디어!!!)이라는 평이 가장 잘 들어맞을 것 같습니다. 평가원 입장에서는 윤사 난이도에 대해 고민이 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작년 수능에서 꽤나 어려운 문제를 한두 개 넣어 봤지만 1컷이 낮아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난도를 대폭 올려야 하기는 하겠는데, 그러다가 중하위권을 변별하지 못하는 사태가 생기면 곤란하니까요. 결국 올해 수능이 중하위권을 잘 변별해 냈을지는 모르겠는데, 상위권은 잘 변별해 낸 듯싶습니다.

그리고 평가원은 상위권 변별을 위해 3을 제외한 1, 2, 4, 5를 '총동원'해서 킬러/준킬러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당장 1번 삶의 태도 문항을 지나자마자, 2번 문항에서부터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선지 전체가 1, 5의 전략으로 점철되어 있어서, 기출문제의 선지나 교과서의 인용 원전 등을 유심히 보지 않았으면 판단이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9번 아리스토텔레스 문항은 정말 역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ㄱ에서는 국가의 목적을 구성원의 목적과 연결 지어 생각해야 하는 선지로 1의 전략을, ㄴ에서는 '덕에 부합하는 영혼의 활동'이라는 행복의 정의와 '탁월한 품성 상태'라는 덕의 정의를 알아야 하는 선지로 1의 전략을, ㄷ에서는 '좋음'과 '행복'을 혼동해서 읽으면 낚이게끔 하는 장치를 쓴 것은 물론 행복 외의 좋음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 선지로 2의 전략을, ㄹ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능 논변을 담은 지문을 통해 4의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 체계와 기능 논변을 종합적으로 제시함은 물론이요, 윤리 사상과 사회사상 단원 융합까지 이루었고, EBSi 기준 정답률이 15%까지 떨어지는 기염을 토한, 실로 어마어마한 문항입니다.

16번 칸트 문항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②에서는 천재교과서의 칸트 '신' 인용문을 활용해서, 도덕 법칙이 인간에게 의무로서 부과되는 이유를 사고하고 그 이유가 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지를 판단하게 만들었습니다. 1, 5의 전략을 조화롭게 사용한 것입니다. ③에서는 2의 전략을 정말 직접적으로 사용해 학생들의 머릿속을 뒤흔들었고요. 반례의 부존재 증명이 상당히 까다로웠을 것입니다. 이 밖의 여러 문제에서도 1, 2, 4, 5의 전략이 고루, 그것도 어렵게 쓰였습니다. 정말 만만치 않은 시험지입니다.

윤사는 진짜 '대학수학능력시험'다웠습니다. 저 자신이 철학과 학생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철학과 관련된 대학 수업에서는 1~5의 난관을 파헤치는 작업과 비슷한 일들을 수없이 많이 해야 해서요. 킬러 문제일수록 각각의 선지가 다분히 철학적 가치를 담고 있었다는 것도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역시 교수들이 내는 시험은 다르군요…… 윤사는 생윤과 다르게 '폭탄처럼 어렵다.'라는 평을 붙일 만합니다.



아무튼!

두 과목 모두 순탄치 않은 시험이었습니다.


언제라도 이번 수능의 주요 문항들을 분석하는 글을 만들 생각이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은 수요가 별로 없을 것 같아서 나중으로 미루겠습니다.

그때는 생윤 윤사 모두 손댈 계획입니다.

예비 고3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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