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首高大 [555999] · MS 2015 · 쪽지

2015-06-16 20:21:30
조회수 4,572

불수능의 추억 (장문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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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먹고 들어와서 소화시킬겸 끄적여봅니다.

요즘은 과탐, 그중에서도 화학이랑 물리2 정도를 제외하고는 계속 물수능이라고
평가받는 시대죠. 작년 국B 제외하고요. 전반적으로!

나 이렇게 어려운 시험 봤다라고 뻗대는게 아니라, 쉬운 과목이 하나도 없었던
리얼 불수능때 과연 분위기가 어땠는지 '혹시라도' 궁금해할 학생들에게
심심풀이로 읽혀지면 좋겠네요.

우선... 2009학년도 6월 모의평가 문과. (2008년 6월 실시)
언어 86/80/73
수가 76/66/57
수나 74/61/46 (50점을 받아도 3등급이군요)
외국 96/90/78 (1컷보다는 2,3컷에 주목!)


때는 제가 재수하던 시절, 저는 고등학교 3년을 어중간하게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전교 5등안에 들어서 스카이를 확정짓는 그런 성적은 아니고
그렇다고 또 아예 펑펑 놀아서 3등급이 하나도 없는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어중간한 학생이었죠. 그리고 다들 아시겠지만 08년도는 등급제 수능이었죠.
08수능 문과 평균 2.8등급을 받은 저는 당시 대학은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재수를 결정했습니다. 부모님도 바라던 바였죠. (강남 살때여서 그 라인
대학은 눈에 차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저 보이는건 연고대 뿐, 당시에는 한양대도 대학으로 안보이던 시절이라
그냥 가방만 들고 재수학원 왔다갔다 했습니다. 당시에는 1년 남들 하는것처럼
공부하면 나도 서성은 자동으로 탑승하는줄 알았던 그런 때였죠. 언론에서는
연일 등급제 수능의 폐해에 대해 노무현을 때렸습니다. 그리고 당시는 이명박
임기 1년차였습니다. 09수능이 헬파이어로 나올것임은 누구나 예측하던 그런
시절이었죠.


2008년 6월 4일, 6월 모의고사날이 왔습니다.

언어영역
당시 언어영역은 지금처럼 정형화된 교재가 많이 없던 시절이었고 많은 학생들이
감으로 풀다시피한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여러가지 정형화된 방법론이
나와있어서 공부하기 한결 수월하죠. 게다가 만점 표점은 144점에 비율은 0%입니다.
저도 현역때 2등급 받던 그 실력으로 그냥 뭔지도 모르고 눈에 보이는대로 풀어댔죠.
결과는 84점 2등급. 이대로만 하면 만점은 아니어도 1등급은 받겠지 싶었습니다.
아, 그리고 그때당시 언어는 대다수 학생들이 만점은 꿈꾸기 어려운 때였습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실력자라면 97~98점이 정상인이라고 생각됐고 만점은 그저 운으로
나온다고 생각되던 그런 때였죠.

수리 나형
당시 강남 학원가는 그야말로 성황이었습니다. 위에서 보다시피 수학이 아주 그냥
불지옥이었거든요. 27문제 30분컷이요? ㅋ 그런건 있지도 않았습니다. 3페이지 가는
그 순간부터 헬게이트가 열리는겁니다. 그리고 그 당시 ㄱㄴㄷ문제는 공포의 대상
그 자체였죠. 기출문제에서 보이지도 않던 신유형이 마구 튀어나왔고, 수열 문제는
왜 그리도 복잡한지.... 크리스마스 트리 문제 풀다가 멘탈이 80%쯤 고장났습니다.
게다가 그 문제에는 함정이 하나 있었거든요..........
가형 학생들에게 문제를 다 푼다는 것은 그야말로 꿈이었습니다. 당시 박승동 선생님도
말씀하셨죠. 문제를 보고 4분 내에 풀 수 없는 문제는 무조건 넘어가라고요.... 당시
선생님이 1강의당 2마디씩 말씀하셨던게 "풀 수 있는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서 확실히
점수를 받는것이 전략이다" 였죠. 15~20번, 24~27번 문제가 모두 어려웠습니다.
정신없이 문제에 얻어맞다가 맨 뒷장으로 넘어가면 28~30번 문제에서 숨통이 트이던
그런 구조였죠. 당시 킬러문제는 17번 문제와 25번에 배치됐습니다. 점수는 80점.
집에와서 1컷 확인해보고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제가 수학에 자만하게 된 본격적인
계기가 됐죠.....

외국어(영어)
제가 고등학교 시절 내내, 그리고 재수때도 깨지지 않았던 불변의 1컷 96점입니다.
제가보기에 당시 학생들의 영어실력 편차가 상당히 컸던걸로 기억합니다. 즉, 영어에
눈이 확 뜨인 학생들은 고정 100이었죠. 틀릴 일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매우 쉬웠어요.
그때는 빈칸대비 이런건 있지도 않았어요. 대비를 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진짜로 그냥
처음부터 읽어서 해석해낼 수만 있으면 빈칸 보자마자 답이 튀어나오는 그런 시험이었죠.
당시 관건은 어법/어휘였습니다. 당시 영어 사교육은 김기훈 로즈리 체제였죠. 로즈리의
내손으로 만드는 시리즈가 유명했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ㅋㅋ 시간 나면 다른 시험도 써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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