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과 만자문
옛날, 어느 마을에 홍이와 식이라는 아이가 살았습니다. 두 아이는 모두 머리가 좋고 영리하였습니다. 그래서 홍이네 부모와 식이네 부모는 두 아이를 금강산 깊은 골짜기에 사는 훌륭한 스님에게 보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두 아이의 부모들은 홍이와 식이를 불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람은 공부를 많이 하여야 훌륭한 사람이 된단다. 그 스님은 배움이 넓고 깊기로 유명하신 분이란다. 그 분을 스승님으로 모시고, 열심히 공부하고 돌아오너라."
다음 날, 홍이와 식이는 집을 떠나 금강산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깊은 산 속에 있는 암자에서 부모님이 일러 준 스님을 만났지요.
"저희들은 스님께 배움을 얻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부디 저희를 제자로 삼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자 스님은 아무 말없이 천자문 책을 꺼내 홍이와 식이 앞에 한 권씩 던져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하라는 말도 없이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배움을 얻으러 찾아온 홍이와 식이는 암자에 둘만 남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며칠 동안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식이가 말했습니다.
"스님은 이 책을 다 공부해야 우리를 제자로 받아주실 모양이야. 그러니 우리끼리라도 공부를 하자."
홍이도 그 말에 찬성하였습니다.
"그래, 그게 좋겠어!"
이렇게 해서 두 아이는 스승도 없이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집 우, 집 주...."
식이는 천자문에 적힌 글자를 열심히 외웠습니다. 그러나 홍이는 그렇게 글자나 외우고 있는 일이 무척 따분하였습니다. 그래서 식이에게 말했습니다.
"식아, 나는 이렇게 암자에 틀여박혀 글자나 외우고 있는 게 도무지 공부같지가 않구나."
"하지만, 스님이 우리에게 공부하라고 이 책을 주시지 않았니? 따분하지만 참고 열심히 공부를 하자꾸나. 그러면 뭔가 배울 게 있을 거야."
"아니야, 나는 좀 더 넓은 공부를 하고 싶어. 나는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내 나름대로 공부를 할 거야."
"좋아. 그러면 우리 삼 년 뒤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
이렇게 해서 홍이는 암자를 떠났습니다. 혼자 남은 식이는 천자문을 펴 들고 매일같이 공부를 하였습니다.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집 우, 집 주...."
한편 암자를 떠난 홍이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배울 것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홍이는 두 아이가 떡을 가지고 다투고 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네 떡이 내 것보다 더 커! 똑같이 나누자고 해놓고, 네가 더 많이 가지면 어떻게 하니?"
"천만에! 이건 똑같이 나눈 거야!"
홍이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얘들아, 내가 공평하게 떡을 나누어 줄게. 자, 막대기를 가져다 놓고, 이렇게 가운데에다 올려놓는다. 어때, 똑같이 나누어졌니?"
"아니에요, 이 쪽이 더 커요!"
홍이는 막대기를 조금 옮겨놓았습니다.
"이번에는 어때?"
"네, 이제 똑같아요!"
홍이는 떡 위에 막대기를 올려놓은 모습을 곰곰이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생각했습니다.
'아, 떡 위에 막대기를 올려놓은 모습이 가운데 중(中) 자하고 똑같구나. 가운데 중 자는 이렇게 양쪽이 똑같아야 한다는 뜻에서 나온 글자로구나!'
또 한 번은 어느 산골마을을 지나다가 나무 그늘 밑에서 앉아 쉬는 노인을 만났습니다. 홍이는 말을 건넸습니다.
"농삿일이 많이 힘드시죠?"
그러자 노인이 말했습니다.
"말도 마시오. 평생 밭을 이고 사는 형편이라오. 하긴 사내라면 누구나 다 그렇지만요."
그 말을 듣고 홍이는 생각하였습니다.
'사내들은 평생 밭을 이고 산다? 힘 력 자 위에 밭 전 자를 쓰면 사내 남(男) 자가 되는구나. 옳거니! 평생 밭을 이고 힘을 쓰는 사람이 사내라는 뜻이로구나!'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홍이는 어느새 천자문에 담긴 글자들을 뜻까지 다 외위 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천자문에 없는 글까지도 그 이치를 새겨 알게 되었고, 심지어는 없는 글자는 알맞은 모양으로 새로 만들어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렇게 삼 년이 지나자, 홍이는 식이가 있는 암자로 돌아갔습니다. 그 때, 식이는 천자문을 달달 외워 "몇째 쪽 몇째 줄에 있는 글자!" 하고 말만 하여도 대번에 알아맞힐 정도가 되어있었습니다.
며칠 뒤에 스님이 암자로 내려왔습니다.
"그래, 너희는 내가 준 천자문 책을 다 공부하였느냐?"
식이는 서슴지 않고 "네!" 하고 말했지만, 홍이는 머뭇머뭇 대답을 못 했습니다. 천자문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세상구경을 하러 돌아다니기만 했으니 말입니다.
스님은 말했습니다.
"내가 이리로 오다 보니, 개똥지빠귀가 쥐며느리를 한 마리 잡아먹고, 비지똥을 뿌지직 싸고 날아가더구나. 자, 이 광경을 글로 적어 보거라."
식이는 움찔 놀랐습니다.
'개똥지빠귀가 쥐며느리를 한 마리 잡아먹고, 비지똥을 뿌지직 싸고 날아갔다? 개똥지빠귀? 쥐며느리? 비지똥? 뿌지직 싸다?'
아무리 궁리를 해 봐도 자기가 외운 천자문에 나온 글자로는 이것을 표현할 길이 없었지요. 그러나 홍이는 척척 써 내려갔습니다. 없는 글자는 모양에 알맞게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홍이가 쓴 글을 들여다 본 스님은 껄껄껄 웃었습니다.
"식이가 천자문을 외우는 동안, 홍이는 만자문을 터득하였구나!"
그 말을 듣고, 식이는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 위기철 저. 《반갑다, 논리야》. (사계절,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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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교육 공부하다가 초딩 때 감명깊게 읽은 이야기가 생각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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