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쩝접 [591036] · MS 2015 · 쪽지

2016-08-13 18:5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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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썰3] 차디찬 바닥에서 'Fly to the sky'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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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편에서 이어집니다. (배경스토리)


(수학B형 위주로의 서술 - 하지만 3월 이후부터는 입시나 타 과목의 경향도 수학B형 공부에 영향을 끼쳤으므로 이번에는 잡다한 것도 좀 간략하게라도 서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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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몇 시간 후에


척수액 검사 결과가 나왔다.


뇌수막염이었다.


병세가 다소 진행된 상황이었다.


"치료가 시시각각 급합니다."


바로 입원 수속을 밟았다.



(이전 편에서 일부 인용 - '바이러스성'이란 문구 삭제 / 바이러스성인지 세균성인지도 까먹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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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그 당시의 심정과 감정, 행동 등을 그대로 서술하였으므로 어그로성 발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기억이 안 나는 부분은 고증 이해 좀...)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은

지금도 참 상상하기가 싫다.


처음에 6인실로 갔다가

밤마다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서

빌빌거리다가

1인실로 옮기고


맛없기로 소문났던 학교 급식보다도

더 맛없는 병원밥을 먹다가

"아 밥먹다가 토 나올 것 같은 기분이다."라면서 한탄하기도 했고


매일매일 약을 먹으면서

척추에 주사기를 꼽는 고통을 참고


혼자 보행하기도 힘들어서

CT나 MRI를 찍으러 갈 때는

휠체어에 의존해서 가야 했고

심지어

화장실도 부축받은 상태로 가야 하기도 했고...


병이 인간의 존엄성을 얼마나 무너트리는지를 실감했던 것 같다.


여하튼 그렇게 생사의 고비는 넘기고

병세는 차츰 나아지기 시작했다.


생각치도 못했던(?) 병문안에

기쁘기도 했었고



"...이제 퇴원 수속을 밟아도 좋습니다."

"...다만 당분간은 집에서 요양하시면서 병원을 주기적으로 찾아오세요."



한 2~3주가 지났을 무렵이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병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


퇴원 수속을 밟고 걸어나오면서

기념으로 병원 안에 있는 편의점과 빵집에서 먹을 것을 샀다.

한 입 베어 물었다.

"아 이게 바로 사회의 맛이구나."

주변을 둘러봤다.

"병원 참 크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몸은 완전하질 못한 상태였기에

학교에 등교는 커녕

집에서 조용히 요양이나 해야만 했다.


집에서 요양하는 동안

마음의 안정을 찾은 듯한 기억이다.

TV를 보면서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되었던 기억이다.



"이제 병원은 더 이상 안 오셔도 될 것 같고요... 혹시라도 재발할 수 있으니 뭔가 이상한 징후가 있으면 바로 병원으로 오세요."



여하튼 그렇게 12월 19일이 지나고

20일날 다시 학교에 올 수 있었다.


"내가 살아서 다시 등교를 할 수 있긴 하구나"하고

교실로 가서

애들한테 잘 지냈냐는 인사도 하고 

전날 이야기(2012년 12월 19일)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퇴원 후 첫 등교날은 그랬던 기억이다.


그리고 며칠 뒤

예비 고3들을 강당에 모이게 한 다음

"예비고3 수능기념 정신력다짐대회"같은 걸 하는 날이었다.

...그냥 몸이 안 좋아서 조퇴했다.

(이 때 뭐 했지?)

(어차피 개근상도 못 받을 몸)


조퇴하고 집에 가던 중 문득

"아 이제 공부는 해야 하는데... 공부를 하는 법도 까먹고 공부한 것도 까먹고...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럼프가 문제가 아니었다.

슬럼프라면 오히려 다행일 상황이었다.


"아 이게 바로 내려갈 때까지 내려간 상황. 바닥이구나."

어디까지 까먹었는지 조차도 불확실하고

공부법이나 공부습관마저 완전히 박살난

'제로베이스'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12월 말.

이제 막 2012년이 지려고 하기 직전.

영어B형 수능특강을 풀어보았다.

책상과 의자에 앉는 것부터 어색했다.

"샤프가 참 어색하게 잡힌다... 이렇게 잡는 거였나"


"아 그래도 일단 다시 공부를 할 수 있겠구나"라고 안도하던 중

문득 "그런데 다시 공부를 시작해도 예전만큼의 성적마저 도달할 수 없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무서웠고 억울했다.

"내가 공부를 하기 싫어서 안 한 것도 아니었구만..."

눈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 절망감과 슬픔, 무력감과 함께.


그 때 문득 며칠 전에 주변 사람들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그냥 몸만 건강해도 되니까... 굳이 대학에 집착하지 않아도 돼..."

"괜히 몸도 안 좋은데 무리하는 거 아니야? 괜한 오기 부릴 필요는 없는데..."

"그냥 이젠... 4년제 대학 정도만 가도 엄마는 바랄 게 없다."


'이제는 물 건너간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바닥에 앉아 좌절감에 빠지려 할 무렵


"병... 내가 고작 이거 때문에 굴복할 운명인가?"

갑자기 이게 운명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기적..."

한 단어가 뇌를 스칠 무렵

이미 한 번 기적을 만들었는데

두 번 못 만들고 세 번 못 만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할 운명... 운명? 난 그딴 거에 굴복 안해. 포기 그딴 것도 없어."

"운명은 내가 만드는 것이고, 미래도 내가 만드는 것이고, 기적도 내가 만드는 거다."

바닥을 박차고 일어날 원동력이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하는 미래를

가능하게 만들고

모두가 희망을 볼 수 없는 곳에서

희망을 볼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나는 바닥을 다시 박차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젠가 

'Fly to the sky'

차디찬 바닥을 박차고 하늘을 나는 날.

기적을 만드는 날에

이 날을 회상하리라 마음먹었다.



2013년 새해가 밝았다.

수학학원 수업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수학 시험지 하나를 풀었다.

100분도 버거웠다.

결과는 2~30점대

그것도 찍거나 답지 살짝 보고

겨우 푼 게 몇몇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일단 현재 나는 공식조차도 까먹은 상태구나..."


다시 공식을 보고 외우고

그 공식대로 기본문제를 풀면서 공식들을 체화했다.

어느 정도 공식들을 체화했을 무렵

4~50점대로 갔다.


그 다음 오개념들을 잡아내면서

수학 개념들을 어느정도 정비하는 한편

차례대로 목표를 수립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첫 페이지 두 페이지에서 틀리는 게

없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바로 달성했다.

그 다음 세번째 페이지로 설정했다.

그 다음은 네번째 페이지 및 3점 문제들...


삼각함수 도형극한같이 그 당시 자주 틀렸던 유형들은

그 유형들이 나올 때마다 신경 쓰면서

이 상황에서 정석 풀이법이 무엇인가

가령

도형의 어떤 부분을 써먹고

중심이나 접선은 긋는다

이러이러한 상황은 주의하자 등을

계속 숙지해나갔다.

(그 당시에는 사설수학 시험지들로 연습했었다.)


(사진 첨부: 2013년 1~2월 당시 수학 시험지 흔적들)



그러는 동시에 쉬운 문제들은 확실히 맞추겠다는 신념으로

2~3점 문제들을 따로 모아놓은 문제집을

풀면서 능숙함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내가 왜 틀렸는가?"

항상 피드백하고 반성해나가면서

문제를 틀리도록 한 요소들을 매번 체크하고

고쳐나갔다.

(가령 계산실수, 무리한 설계 등등...)


(사진 첨부 : 이 당시 흔적들 / 이 때 모의고사집 5~6개는 되었을 듯)


그렇게 2월 후반이 되었을까

어느새 6~70점대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바닥은 어느 정도 벗어난 건가?





그리고 새학기가 밝았다.

2013년 3월. 나는 고등학생 3학년이 되었다.


겨울방학 내내 건강 사정으로 방과후학교를 빠졌다가

정상적인 생활 루트 (...정상적인가?)로 다시 진입한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 몇몇과

그래도 낯선 얼굴 몇몇들

새학기의 긴장도 잠시

3월 모의고사가 찾아왔다.



"수학 B형은 69점... 하... 내가 수학II에서 구멍이 있었구나."

(수학II - 방부등식, 삼각함수, 함수와 극한과 연속, 미분)

3등급이었다.

수학은 분명 회복권에 들기 시작한 측면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원점수 총합은 290대 후반

아직도 멀었던 상태.

수학에서도 분명 약점이 있었던 상태

"하... 영어 탐구를 신나게 말아먹으니 씁쓸하다."

눈물의 봄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갔다.


여하튼 그렇게 3월 모의고사는 지나고

약점을 메꾸기 위해 함수극한과 삼각함수를 중심으로

양치기(?)와 엄밀한 풀이 연습으로 대하던 중


전교 등수가 일정 범위내에 드는 애들을 대상으로

학년부장 선생님이 불러서 무언가를 하는 모임이 열렸다.


"아 쟤는 가는구나. 나는 이번엔 아니네. 그냥 공부나 하자."


뭐 현실이니까. 그랬다.


그리고 4월 모의고사는 시나브로 찾아왔다.


수학B형 84점. 1등급과 2등급의 경계였다.

(최종적으로는 2등급이었다.)


그 날 혼자서 신나가지고

수학선생님(1편의 그 분과는 다른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저 1등급일 것 같아요!"라고

신나게 자랑을 했었다.


곧이어 모의고사 등수표가 걸렸다.

전교 10몇등대.

원점수 총합 320 중반대.


그 등수표가 걸린 날

애들의 질문들이 폭주했다.


"야 너 공부 잘했었냐?"

"얘 저번에 아퍼서 입원했었잖아"


"이번에 1등급 가능?"

"아마도?"

"키야... 얘 잘하는 거 왜 몰랐지"


담임 선생님(영어 담당)도

"너 이름이 뭐였지?"

"OOO이요." (속마음 : 내가 있는지도 몰랐나)

"이번에 시험 잘 본 편이더라?"

"아 네"



희망도 없는

저 깊은 차디찬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그 바닥을 박차고 올라가서

4월 모의고사를 통해

나름 화려한(?) 복귀식을 한 셈이었다.


그리고 그 화려한 복귀식을 맞으며

"이대로 올라가는 추세라면 나도 언젠가는 하늘을 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화려한 복귀식 속

그 당시 하늘을 향해 날아가던 날개는

아마도 밀랍날개였는지도 모른다.




"야 이번에 너 어디 대학 목표로 생각 중이냐?"


"그래. 이번에 수시 어디 쓸 생각이니?"




강렬한 태양빛을 받으며

이카루스의 날개와 같이

밀랍날개는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그리고 날아가는 속도도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



p.s


여러분의 운명은 여러분이 스스로 만드는 겁니다.

여러분의 미래도 여러분이 스스로 만드는 겁니다.

여러분의 기적도 여러분이 스스로 만드는 겁니다.


밀랍날개가 아닌 제대로 된 날개와 

하늘을 향해 부는 바람만 있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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