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생이 수능 망한 이야기해드릴게요.
고 3 때 얘기부터 시작하면 공부를 정말 안했어요. 자랑이 아니고 어렸을때부터 책이란 책은 모조리 읽는 스타일이어서 언어는 아무런 노력 없이 그냥 1등급 찍었었어요.
남들이 푼다는 EBS 정도 좀 풀고 딱히 공부는 안했어요. 그래서 언어는 그냥 1등급 나오겠거니 편하게 생각했고, 사실 수리가 정말 안 나오는 문과생이었어요.
거짓말 안치고 중학교 2학년때 맞았던 97점이 최고점일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수리는 평균 3등급이었어요. 외국어는 2등급? 1등급은 못 찍고 항상 2등급 중반에서 머물러 있는 성적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냥 막연하게 중경외시는 가겠지~ 진짜 이렇게 생각했어요. 진짜 고 3은.. 진짜 아실거에요 재수하신 분들은 그 고 3때의 막연한 그 느낌을요 ㅋㅋ 근자감이라고 하죠. 정말 고 3 수능보러 가는 날 아침의 기억이 생생하네요. 중경외시는 가겠지 뭐 ㅋㅋㅋ 했던. 어쨌든, 고 3때는 그냥 친구들이랑 놀고 그랬어요. 야자도 빠지고 남아서 공부도 안하고...
차라리 막 444 나오면 공부좀 해야겠다 하겠는데 어중간하게 좋게 점수가 나오니까 안해도 되나보네? 란 생각이 있었어요.
근데 수능 끝나고 나오니까 144 더라구요. 그 참담한 느낌은... 하, 정말 뭐라 말할 수가 없죠. 그 때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재수해야겠다 생각했던거 같아요.
고 3때 워낙 공부를 안했으니 재수때 한 번 제대로 해보자, 라는 마음이었어요. 재종을 들어갔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하루에 12시간씩 꼬박꼬박 했냐고 물어보면, 솔직히 당당히 네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어요.
그런데 확실했던건 고 3때에 비해서 공부양을 세배쯤으로 늘렸다는 건 사실이네요. 이건 돌이켜봐도, 제 마음에 한 점 거짓없이 진실(선서하나요 ㅎㅎ)하네요.
처음으로 밥 먹으면서 단어도 외워봤고 계단 오르면서 EBS 책 코에 박고 외워보기도 했어요. 못해도 평일에 매일매일 8시간은 스톱워치로 찍으면서 공부했고, 12시간씩은 하지 못해도 7~8시간은 규칙적으로 했었어요.
그렇게 6월을 봤어요. 432/11이 나오더라구요. 죽고 싶더라고요 ㅎㅎ 내가 뭘 했나. 나름 한다고 했는데도 그게 안된단 말이냐, 자괴감이 엄청났던것 같아요. 특히 남들이 다 쉬웠다는 언어가 왜 저한테는 작년보다 어려웠는지 이해가 안되더라구요.
그래도 어쩌겠어, 아직 6월달인걸 하는 마음으로 계속 했어요. 사실 고 3때 여름방학때 징하게도-_-; 놀았기 때문에 이번 7,8월은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겠다 싶은 생각에 학원도 나와서 계속 했어요.
9평이 131이 나오더라구요. 아, 하면 되는구나. 이대로 가겠구나. 너무너무 좋아했어요. 엄마한테 나 재수하는 보람이 있구나, 나 이번에는 가겠구나. 건동홍은 가겠구나. 전화로 바로 당장 말했을만큼이요.
근데, 사실은 10월 중에서 보름을 놀아버렸어요. 이 때되니까 그냥 아무데나 가버리자 지쳐서 못하겠다 이 마인드가 되더라구요. 책은 보는데 내가 좋아하는 과목만 보게 되고... 이게 패인의 요인이라면 패인의 요인이겠네요 ㅎㅎ
그러다 10월 중순부터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뭐 책을 끼고 살았네요.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특히 EBS는 모조리 달달달 외웠어요. 지금봐도 내용이 기억날정도로요. 이정도면 됐다, 9월보다 못 나올리는 없겠지, 설마. 그 생각만 계속 하면서 버텼어요.
교과서가 너무 봐서 앞장이 찢어지고 그럴 정도가 될때까지 책을 보고 또 봤어요. 화장실에서까지 책을 보느라 물에 빠트리고(변기물 말고요...흑흑) 책이 다 너덜너덜. 그냥 마음이 홀가분해지더라구요, 뭔가 이번엔 될거 같아, 그런 마음이요. 수학이 부족했으니까, 막판까지 미적분 과외까지 받아봤었지요. 정말 별 난리를 쳤었네요 ㅎㅎ
작년에는 11월 조차도 놀았거든요. 참 무슨 정신이었는지.
마음을 비우고, 어디라도 가자 라는 마음으로 시험을 쳤어요. 결과는 333/23이네요. 어제 너무 많이 울고 기운을 빼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든 대학 하나 가겠다고 난리를 치면서 공부를 한게 허무하더라구요. 언어가 이렇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ㅎㅎ 책 읽어봤자 그것도 소용없나봐요. 나름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는데 그 나름이 안되는건지.
재수한거 자체에 후회는 안하지만, 그래도 참 허무하고 암담하더라구요. 어제는 정말 독약을 내내 가슴에 품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어서,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누웠는데 잠은 안오고 집안은 초상집 분위기고 눈물만 나고.
지금은 거의 초탈해서 그냥 내가 어디갈수 있을까 이 마음으로 대학 찾아보고 있어요.
한가지 아쉬운건, 저는 오르비 분들이 많이들 가시는 최고급 명문대를 원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내 부모님이 주위사람들한테 얘는 여기 나왔어~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대학을 가고 싶었는데. 내가 한 노력이, 저 정도의 등급을 받을 가치밖에 안되는 거였나? 그런거요. 술을 마시러 간적도 없고 재종반에서 아이들과 놀지도 않았고 얘기도 나누지 않았건만, 먼저 대학 간 친구들이 너 이번엔 되겠다 라고 말하는걸 들었었건만. 나보다도 저희 부모님한테 미안해서 사실은 어쩔바를 모르겠어요.
혹시 재수하실 분들이라면, 하세요. 저는 재수하면서 성적은 오르지 못했지만 그래도 많은걸 얻었어요. 인생에 정말 '공짜'는 없다는걸 배웠고, 무엇을 해도 노력을 해야하는구나, 이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배웠어요. 왜 저는 그 사실을 일찍 깨닫지 못했을까요? 노력없이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재수하는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다만 아쉬울뿐인데, 그건 각자가 하기 나름이겠죠.
이 시점에서 후회하는게 있다면 하루에 12시간, 13시간씩 해볼걸 하는거에요. 그렇게 됐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굇수분들이 모이신 오르비에서 제 비루하기짝이 없는 성적 얘기하려니 부끄럽지만 ㅎㅎ 자기 성찰겸 한 번 써봤어요.
사실은 지금도 뭘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안 잡히지만. 그래도 그냥 살아보려고요.
다만 제가 중학교때부터 가고 싶어했던 그 대학.... 그 대학 못 간다는게 그냥 아쉽고, 아깝네요.
10년뒤의 제가 이 때를 돌아보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적어도 지금부터의 10년, 20년 그 이후로도.... 적어도 노력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네요.
현역, 재수생, N수생 여러분. 너무나 수고하셨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나요, 우리 모두다. 여러분은 모두 잘 되실거에요.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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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20살 대학생의 낭만을 꿈꾸며
어두운 독서실
그 많은 숙제들
버티면서 공부했는데
그냥...
이렇게 되버려서
슬프다고요.;; ㅠㅠㅠㅠ ㅠ진짜 울고 싶다 진짜
님 글보고 울었어요 ..
뭘 울고 그래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냥 마음껏 우세요. 지칠때까지 우는게 좋은거 같아요. 저도 사실은 어제 엄청 울었어요. 정말 많이 울었어요. 나 어떻게 해야하지? 이말만 수십번 했던것 같은걸요. 재수생인지, 아니면 현역인지 모르겠지만. 의류학과 님도 정말 수고하신거에요. 정말 열심히 하신거에요. 그리고 이게 끝이라는거.... 정말 끝이라는거.... 우리 그것만 명심하고, 앞으로 뭘 해도 열심히 해요. 괜찮아요. 다 괜찮아요.